전편 아이맥스 필름 촬영에 쓰인 필름 길이만 610km, 필름값만 약 40억 원.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과장이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직접 보고 나서는 그 말이 오히려 절제된 표현이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외에서 단기 귀국하신 아버지와 급하게 평일 낮 예매를 잡아 보고 온 이 영화, 3시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CG 없이 찍었다는 말, 직접 보기 전까진 반신반의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화 속 괴물이나 거인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VFX(Visual Effects)로 처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VFX란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실제 촬영 영상에 가상의 요소를 합성하는 후반 작업을 말하는데, 요즘 대작 영화에서 거의 필수처럼 쓰이는 기법입니다. 그래서 저도 폴리페모스 같은 외눈박이 거인 장면쯤은 당연히 CG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봤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실제 그리스의 네스트로 동굴, 높이 29m짜리 천장을 가진 천연 동굴로 직접 찾아갔고, 거기에 무려 18m 높이의 대형 애니매트로닉스를 통째로 운반해 들어갔습니다. 애니매트로닉스(Animatronics)란 원격 조종 또는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정교한 실물 크기의 인형 또는 모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디지털이 아닌 물리적으로 실존하는 괴물입니다.
클로즈업 표정 연기가 필요한 장면에서는 배우 빌 어원이 전신 특수 분장을 하고 직접 괴물 소리까지 내며 연기했다고 합니다. 동굴 입구에는 실제 거대한 벌집이 있었고, 40마리의 살아있는 양들과 배우, 스태프가 비좁은 공간에서 수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제가 보면서 병사들 얼굴에서 느꼈던 그 진짜 같은 공포가, 알고 보니 연기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감정이었던 셈입니다.
- 폴리페모스 신: 실제 그리스 네스트로 동굴 + 18m 애니매트로닉스 거인 제작
- 키르케의 변신 마법: CG 0%, 특수 제작 보형물과 카메라 무빙만으로 완성
- 라이스트리고네스 전투: 키 210cm 스턴트 배우 vs 키 150cm 스턴트 배우의 앵글 트릭
- 사이렌 장면: 주인공 맷 데이먼이 실제로 배 위에서 결박된 채 수 시간 촬영
아이맥스 전편 촬영, 숫자로 보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영화 오디세이는 인류 영화 역사상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편을 아이맥스 필름으로 촬영한 작품입니다. 아이맥스(IMAX)란 일반 영화보다 훨씬 큰 필름 포맷을 사용해 초고해상도 화면을 구현하는 영화 기술 규격으로, 화면 비율과 음향 모두 일반 상영관과 차원이 다릅니다. 문제는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 자체가 초고속으로 필름을 이동시키는 구조라 공사장 수준의 소음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대사가 있는 장면을 아이맥스로 찍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놀란 감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맥스 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소음 문제를 해결해주면 100% 아이맥스로 찍겠다고 제안했고, 그 결과 '블림프(Blimp)'라는 방음 케이스가 오직 이 영화 하나를 위해 새로 개발됩니다. 블림프란 카메라를 감싸는 방음 외장 케이스로, 촬영 소음을 극적으로 줄여주는 장비입니다.
그러나 블림프의 무게는 무려 180kg. 배우가 상대방 얼굴을 볼 수 없게 되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고, 해결책은 카메라에 거울을 달아 반사 이미지로 서로를 보며 연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봤을 때 그 섬세한 감정선이 어떻게 이 환경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했는데, 이 비하인드를 알고 나서야 납득이 됐습니다. 총 6개 국 로케이션에 180kg짜리 카메라를 매번 비행기로 실어 나르는 스태프들의 노고까지 포함하면, 이건 영화 제작이 아니라 거의 원정대 수준의 작업이었습니다.
트로이 목마부터 배우 연기까지, 현실주의가 스크린에 닿는 순간
트로이 목마 장면은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입니다. 높이 11m, 무게 4톤의 목마를 모로코 해변에 실제로 제작해 세워뒀다는 것도 놀랍지만, 놀란 감독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존 영화들과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보통 영화 속 트로이 목마에는 바퀴가 달려 있습니다. 이동과 제작이 편하고 시각적으로도 익숙한 설정이니까요. 그런데 호메로스의 원전에는 목마 바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사실 없다고 합니다(출처: Perseus Digital Library,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원문).
그래서 놀란은 목마를 해변에 버려진 봉헌물로 트로이인들이 우연히 발견하는 설정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이는 역사적 고증에 더 가까운 해석이자, 영화적 리얼리티를 끌어올리는 선택이었습니다. 목마 내부 장면 역시 실제 그 목마 안에 들어가서 찍었고, 촬영 전날 맷 데이먼이 "목마는 어떻게 찍을 거냐"고 물었을 때 놀란의 대답은 단 한 마디, "일단 타"였다고 합니다.
죽은 자들이 땅에서 솟아오르는 장면에서는 스턴트 배우들을 진짜로 땅에 묻었습니다. 스노클 장비로 숨을 쉬게 한 뒤 큐 사인에 맞춰 땅에서 올라오게 한 것인데, 안전 요원의 일대일 마크와 타이머 측정까지 갖춘 뒤 6월 아이슬란드의 백야 기간을 골라 촬영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아, 이건 당연히 CG지'라고 생각했거든요. 아니었습니다.
3시간이 짧았던 이유,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본 이 영화가 남긴 것
3시간짜리 영화라고 하면 보통 중간에 한 번쯤 지루함이 찾아오는 구간이 생깁니다. 적어도 제 경험상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디세이는 달랐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벌써?"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스펙타클한 장면들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는 것도 있었지만,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 자체가 가진 힘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거인, 마녀, 괴물, 폭풍을 만납니다.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었기에 끝까지 나아간 이야기입니다. 제가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이 장면들을 보면서,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건 결국 돌아가야 할 곳과 기다리는 사람의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내 여정은 얼마나 간절하고 뚜렷한가, 잠깐 돌아보게 됐습니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음악감독 루드비히 요란손은 이 영화에서 오케스트라를 과감히 배제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 오케스트라가 없었다는 이유로 청동 악기, 복제품 리라, 아울로스 같은 고대 그리스 악기들을 실제로 동원했습니다. 리라(Lyre)란 고대 그리스의 현악기로 하프와 비슷한 형태의 소형 발현악기이며, 아울로스(Aulos)는 고대 그리스의 이중 관악기입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에는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등장합니다. 고대의 음유 시인과 현대의 래퍼가 본질적으로 같은 퍼포먼스를 한다는 놀란의 해석이 담긴 캐스팅이었습니다(출처: IMDb, 오디세이 공식 정보). 크레딧 첫 번째 이름을 트래비스 스콧으로 박아버린 것도 같은 맥락의 메시지였습니다. 아는 언니가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내가 이 돈으로 감히 이 영화를 누려도 될까?" 저는 그 말의 의미를 극장을 나오면서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디세이 영화 CG 얼마나 써요? 진짜 거의 없나요?
A. 일반적으로 이런 신화 스케일 영화는 VFX가 90%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오디세이는 다릅니다. 폴리페모스 거인, 변신 마법, 죽은 자 부활 장면 등 모두 실물 애니매트로닉스나 실제 스턴트로 촬영했습니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본인도 밝혔듯, 모든 곳에 VFX 후반 작업이 들어가 있습니다. CG를 안 쓰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찍은 것을 VFX로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Q. 오디세이 아이맥스로 봐야 하나요, 일반관이랑 차이 크게 느껴지나요?
A. 제 경험상 이건 무조건 아이맥스입니다. 이 영화는 전편을 아이맥스 필름으로 찍은 세계 최초의 작품으로, 일반 상영관과 화면 비율 자체가 다릅니다. 암표가 돌 정도로 아이맥스 매진이 이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아이맥스 상영관을 추천합니다.
Q. 오디세이 원작 내용 미리 알고 봐야 하나요?
A. 저는 오디세이아 원전을 전혀 모르고 봤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서사시인데, 영화 자체가 이를 전혀 모르는 관객도 흡입력 있게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원작을 아는 분들은 고증 디테일에서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Q. 트래비스 스콧이 왜 오디세이에 나오는 건가요?
A. 단순한 특별출연이 아닙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고대 오디세이아가 원래 글이 아닌 음유 시인의 구전 퍼포먼스였다는 점에 주목했고, 현대의 래퍼가 그와 본질적으로 같은 역할을 한다고 판단해 트래비스 스콧을 캐스팅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도 첫 번째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이야기는 언제나 이야기꾼을 통해 전달된다는 놀란의 메시지를 담은 의도적 배치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오디세이는 "봐도 될까?"가 아니라 "어떻게든 봐야 하는"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봐봤는데,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애니매트로닉스, 아이맥스 필름, 실제 로케이션 촬영이라는 세 가지 기둥이 맞물려 만들어낸 몰입감은 스트리밍으로 옮겨지는 순간 상당 부분을 잃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극장에서, 가능하면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보는 것을 권합니다.
21년 전 트로이 프로젝트를 빼앗겼던 크리스토퍼 놀란이 20년간 머릿속에 품어온 목마 장면 하나를 들고 오디세이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영화 속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와 겹쳐 보입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라는, 그 이야기를 감독 자신이 몸으로 증명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