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작비 2억짜리 저예산 영화라는 말에 반쯤 기대를 접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서 나오는 순간 꽤 오랫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은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평소에 애써 외면하던 질문들을 정면으로 들이미는 영화였습니다.
첫인상이라는 함정 — 저도 영희의 얼굴을 내내 찾고 있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인물들이 하나같이 어머니 영희에 대해 "봐도 봐도 못생겼다", "괴물같이 생겼다"는 말을 쏟아냅니다. 그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화면 속 영희의 얼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는 교묘하게 얼굴을 비켜가고, 저는 그 궁금증을 내내 안고 영화를 봤습니다.
이게 단순한 연출 기법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사람들이 이미 가진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면서, 관객 스스로 그 편견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진으로 비로소 영희의 얼굴을 마주쳤을 때, 저는 예상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에 당황했습니다. 끔찍하게 못생긴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 슬픔이 올라왔습니다. 선한 사람이 그런 이유로, 그런 결말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현실처럼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평소에도 처음 만나는 사람의 겉모습이나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그 습관을 영화가 조용히 짚어낸 셈입니다.
- 영희의 얼굴은 영화 내내 카메라에서 의도적으로 가려진다
- 주변 인물들의 반복된 발언이 관객의 편견을 먼저 심어놓는다
- 마지막 사진 공개 장면에서 그 편견이 역으로 뒤집힌다
- 이 구조 자체가 외모지상주의(lookism)에 대한 영화의 핵심 질문이다
외모지상주의의 민낯 — 아버지의 설정이 신의 한 수인 이유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감탄한 지점은 아버지의 설정입니다. 전각(篆刻) 장인, 즉 도장을 파는 장인인데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입니다. 전각이란 나무나 돌에 글자나 문양을 새기는 공예 기술로, 섬세한 심미안(審美眼)이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쉽게 말해 아름다움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눈으로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역설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압니다. 어떻게 아는지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반응으로 체득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좋아하면 아름다운 것이고, 외면하면 추한 것이라는 걸 경험으로 쌓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게 외모지상주의(lookism)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외모지상주의란 외모가 개인의 능력이나 가치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적 편견을 뜻합니다. 아버지는 그 개념을 눈이 아닌 사람들의 태도로 배운 셈입니다.
권해효 씨의 연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압도적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한 배우가 한 장면에서 이렇게 많은 감정을 전달하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특히 박정민 씨가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먼저 연기하고, 권해효 씨가 그 톤을 받아서 현재의 아버지로 이어갔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두 배우가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같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1인 2역(one actor, two roles)이라는 기법을 단순한 제작비 절감 수단이 아니라 서사적 장치로 활용한 것입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에 따르면 이 영화의 공식 상영 시간은 102분입니다(출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저는 영희 캐릭터가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정의를 따르고 부조리에 목소리를 높이는 인물이지만, 융통성 없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원칙을 고집하는 모습이 보는 내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그 답답함 자체가 이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이라는 걸, 엔딩에 가서야 깨달았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복귀 — 이야기할 거리가 쌓이는 영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연상호 감독의 최근 몇 작품에서 다소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옥》이나 《부산행》에서 느꼈던 그 날카로운 감각이 희석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반쯤 방어적인 태세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달랐습니다.
제작비는 알려진 바로는 약 2억 원 수준입니다. 소수 정예 스태프와 배우들이 뜻을 모아 만든 영화입니다. 저예산 영화에서 종종 보이는 투박한 구석이 군데군데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혀 거슬리지 않은 이유는, 이야기 자체의 밀도가 그 허술함을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비판(media criticism), 즉 언론과 방송이 개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비하고 가공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여자 PD 캐릭터를 통해 날카롭게 녹아 있습니다. 미디어 비판이란 여기서 언론과 방송이 취재 대상의 진실보다 시청자의 흥미를 우선하는 이중성을 지적하는 시각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70년대 산업화 시대의 사회적 그늘, 자존감과 모멸감의 문제, 인간의 이중성이라는 층위들이 하나의 가족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쌓여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영화 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저예산 독립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3~5억 원 수준으로, 이 영화는 그보다도 낮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셈입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은, 엔딩이 관객에게 판단을 위임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인물에게도 완전히 선한 역할을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아들 동환이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가장 공감을 얻었지만, 그 동환마저도 이중적인 면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 불편함이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게 만들었습니다. 와이프도 극장을 나오며 "아버지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런 여운을 주는 한국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얼굴》 스포 없이 봐도 재밌나요?
A. 충분히 재밌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친다는 것만 알고 가도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예고편 이상의 정보를 미리 알고 가면 영화 중반 이후의 충격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Q. 제작비 2억짜리라는데 영화 퀄리티가 떨어지지 않나요?
A. 제가 직접 보면서 저예산이라는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군데군데 투박한 질감이 있기는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이야기의 밀도가 그 부분을 덮어버립니다. 오히려 그 투박함이 이 영화의 결을 만들어주는 측면도 있습니다.
Q. 연상호 감독 초기작을 좋아했는데 이 영화도 맞을까요?
A.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처럼 사회의 불편한 구조를 날카롭게 짚어내는 감성을 좋아하셨다면, 이 영화가 꽤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차갑고 냉철한 시선이 이 영화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느낌을 저는 받았습니다.
Q. 박정민이 1인 2역을 한다는데 어색하지 않나요?
A.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아들 역할과 아버지의 젊은 시절 역할을 오가는데, 두 캐릭터의 톤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해서 연기하기 때문에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 역할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순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결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동안 먹먹했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어머니가 어떻게 죽었는지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인지 느껴집니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하셨다면, 어머니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정도만 알고 극장에 가시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함께 본 사람과 극장을 나와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와이프와 집에 돌아오는 내내 이야기가 끊기질 않았습니다. 그런 영화가 요즘 한국 영화에서 얼마나 드문지, 보고 나면 아실 겁니다.